얼마 전 오래 전부터 교제해 오던 신학교 교수님하고 전화 통화를 하게 되었다. 이 교수님이 자신의 학교 탁상 카렌다를 보내줄까? 하고 물으시면서, 자신이 올해 학교에서 맡은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거다. 그러면서 나에게 자기 학교에 박사과정에 들어오라는 거다. 그래서 내가 이 나이에 무슨 박사냐며 웃고 넘겼다. 그러면서 내가 그 교수님에게“올해 학교에서 여러 가지를 맡아서 바쁘시겠어요.”라고 말하니깐, 이 교수님이 뭐라고 하냐면“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이 온다고 하면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내죠. 그런데 내가 만나기 싫거나 부담되는 사람이 온다고 하면 바쁘다고 말하거나 약속이 있다고 말하거나 하면 되요”라고 하는 거다. 내가 이 말을 듣고“맞네요”라고 화답했다.
이 말이 내 마음에 와 닿는 거다. 그러면서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이럴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주일날 예배당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도 똑같다. 정말 우리가 주일날 예배당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예배당에 와서 예배를 드린다. 그런데 주일날 예배당에 와서 예배를 드리기 싫으면 이런저런 핑계와 변명을 댄다. 예를 들면 요즘은 코로나 핑계를 댄다. 코로나 핑계를 대면서 예배당에 와서 예배는 안 드리면서 그 외 코로나 감염이 일어날 수 있는 곳들에는 자기가 가고 싶으면 어떻게든지 간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할 건, 우리 사람들은 그게 핑계인지 아니면 정말인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신다는 거다. 우리가 정말로 코로나 때문이라면 코로나가 감염될 수 있는 곳은 어디도 가면 안 된다. 솔직히 코로나 감염은 가정에서 가족 식구로부터 감염될 가능성이 더 많다. 그렇다면 가족식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 안 된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 안 된다. 가족식구들이 밖에 가서 코로나 감염이 일어날 만한 곳에 갔다면, 그 가족하고 함께 지내면 안 된다. 그런데 이런 건 생각하지 않는다. 주일날 교회에 오는 거에 대해서만 코로나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 성도들은 늘 하나님이 내 마음과 생각을 아신다는 걸 기억하고 믿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그래야 성도다운 삶, 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조금이라도 살아갈 수 있다는 걸 기억하면 좋겠다. 2022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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