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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스카웃트 되고 싶다.
심시영 2012-09-12 추천 0 댓글 0 조회 792
 

하나님께 스카우트 되고 싶다.


최명찬 님이 보낸 글



“외삼촌 하나님께 스카우트 되었습니다.”


이 말은 조카가 이 세상에서 제게 마지막 남긴 말입니다. 엊그제 저녁퇴근 무렵 병원에 입원한 조카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외삼촌 보고 싶은데 오실 수 있나요.”


전화를 끓자 와이퍼가 미처 앞 유리를 닦아내지 못하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 붓는 폭우를 무릅쓰고 차를 운전하여 병원으로 내 달렸다. 암 투병중인 조카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쇠잔해 있었다. 호흡 곤란으로 힘들게 전화로 간신히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 같았다. 올해로 52살인 조카는 1년 반 전 폐암으로 힘겨운 투병을 지속하고 있었다. 이미 다른 장기로 전이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다. 병실에 들어서니 멋쩍은 듯 고개를 돌려보며 웃는다.


“외삼촌 기도해주세요” 그러나 나는 짐짓 딴소리로 분위기를 돌리려고 “야 외삼촌이 뭐가 보고 싶냐 주님이 보고 싶고 주님 찾아야지” 그러자 조카는 특유의 순발력으로 농담으로 답한다. “외삼촌이 잘생겼잖아요.” 투병 중에도 곧잘 농담으로 사람들을 미소 짓게 했다. 자신이 잘 생겨서 간호사들이 약을 잘 가져다준다고 한다. 호흡이 힘들어서 눕지도 못하고 침대를 내려와 앉은 자세로 산소마스크를 써야 그나마 안정을 찾았다.


의료진이 다음날 오전 회진 때 가까운 가족들에게 통보하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렇게 상황이 빨리 전개될 줄을 몰랐는데 아직 겉으로 보기는 멀쩡한데 말이다. 오후에 병실을 찾았다. 여전히 호흡은 힘들지만 잘 버텨주고 있었다. 가만히 옆에 앉아 기도하고 '주님 주시는 평안을 구해라' 위로하며 등에 손을 얹고 기도했는데 조금 후 힘들여 조카가 하는 말이 “외삼촌 저는 하나님께 스카우트 됐습니다.” 하며 웃는다.


너무나도 확연한 의지와 태연함에 속으로부터 올라오는 뜨거운 눈물을 삼키면서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하며 태연하려 했지만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누님은 아들의 마지막을 보려고 늦둥이 어린 손녀를 데리고 버스로 상경하던 중 달리는 차속에서 깜빡 잠이 들었는데 너무나도 생생하게 “예수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이 찬송이 말로 표현키 어려운 아름다운 음성으로 귀에 들려 마치 천국 찬양대가 부르는 듯한 합창으로 들려와 얼마나 위로를 받았는지 모르겠다고 간증했다. 병실에 모인 20여명의 가족들이 조용한 음성으로 이 찬양을 시작하자 힘들게 숨을 몰아쉬던 조카도 산소마스크를 낀 채 찬송을 따라 부르며 온갖 주사 바늘이 꼽혀있는 손을 들어 흔들고 오른 발로 박자를 맞추기도 했다.


찬송이 끝나자 사랑하는 아내와 작별의 입맞춤을 오래도록 했으며 늦둥이 어린 딸을 껴안고 볼을 비볐다. 눈물 흘리며 소리 지르는 딸을 토닥거리는데 “외삼촌 이것이 눈에 밟히는데 그래도 괜찮습니다.” 한다. 내가 거듭 구원의 확신과 천국 소망을 말하자 “외삼촌, 내가 바봅니까 한다.” 그래 맞다. 이 외삼촌이 믿음이 없다. 조카는 힘든 와중에도 계속 찾아오는 지인들에게 거수경례를 보낸다. 그러다 너무 힘드니까 필담으로 이제 집에 가고 싶다 집으로 가자한다. 가족들과 의논하여 집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하기로 했다. “야야! 끝까지 정신 차리고 주님 붙들고 가자” 하니 조카가 ”네 외삼촌 집에 갈 때까지 바짝 정신 차리고 갈께요” 앰뷸런스를 타고 떠나는 조카와 이렇게 마지막 이 땅에서의 이별을 했다.


조카는 그날 저녁 늦게 친구들과 많은 지인들이 기다리는 고향에 있는 병원 문을 앰뷸런스에서 내려 걸어서 병실로 가면서 새벽까지 기다리는 저들과 다 눈 맞추고 인사하면서 병실에 들어섰다. 그러나 잠시 후 고단한 여행을 마친 조카는 침대에 몸을 눕힌 지 30여분 후 호흡이 가늘어지면서 천국여행을 떠나고 말았다. 의학적으로 그 몸으로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시간과 거리를 조카는 불굴의 정신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이 땅에서의 마지막 여행을 했던 것이다. 집에까지 가는 동안은 정신 차리겠다는 약속까지도 조카는 놓지 않고 버틴 것이었다. 경북 의성군 춘산면 효선리 산골은 앞뒤 좌우가 다 산으로 병풍 친 듯한 조카가 태어난 고향이다.


조카는 농부였다. 대학과 군대를 마치고 잠시 도시에서 머물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지가 일구어 놓은 터전을 근간으로 농사를 했다. 근 30여년을 농사에 몰두하며 유기농 효소를 만드는 현대식 공장까지도 운영하며 선구자적인 삶을 일구어왔다 “풀의 정” 이라 불리는 효소는 까다롭고 엄격한 미국 FDA 심사를 필할 정도로 양심적으로 만들었다. 이러기 까지 얼마나 힘들게 일했는지 조카의 손을 잡으면 마치 쇠붙이를 만지는 것처럼 두껍고 거칠고 투박했었다. 만날 때 마다 조카의 손을 잡으면 늘 마음이 짠하게 아팠다. 농민운동을 했고 마을에서 고향교회를 지키며 교사로 신앙생활을 했고 또 마을 공동체를 위하여 귀농한 젊은 후배들과 소통을 하며 저들의 귀감이 되었던 것이다.


오늘 조카를 땅으로 돌려보내고 돌아와 1년 반 동안 조카의 투병했던 시간을 회상하며 우리 주님께서 이 기간을 통하여 놀라울 정도로 조카의 믿음을 성장시킨 사실 앞에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가까운 이들의 죽음과 마지막을 본 내게 이처럼 멋지게 마지막을 장식하고 떠난 사람은 조카가 처음이었다. 조카도 발병 당시에는 죽음 앞에 두려워하고, 분노하고, 포기하는 모습도 있었지만 이처럼 마지막에 담대한 모습을 보인 것은 주님의 놀라운 은혜라 아니할 수 없다.


절대로 코앞에 닥친 죽음 앞에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않고 오직 천국을 바라보는 그 늠름하고 담대한 모습에 나 자신이 얼마나 초라해보였는지 모른다. 그렇다. 조카는 위대한 승리자였던 것이다. 인간적인 약한 모습도 있었지만 생명이 거의 막바지에 이른 시간까지도 아내의 손을 부여잡고 소리 내어 주님께 부르짖던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조카의 기도소리가 지금도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하나님께 스카웃 됐다는 고백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자신이 떠난다는 사실을 이렇게 표현하는 조카는 평소에도 투병 기간 중에도 유머가 살아있었던 사람이었다. 내가 남아 외삼촌 장례를 치러야하는데 젊은 조카가 먼저 가니 죄송하고 고맙다고 했다. 외삼촌하고 대중목욕탕 한번 못가 본 게 미안하다 하며 지켜보고 있는 내게 아내와 대화하는데 이런 이야기를 한다.


이 팔, 손등에 달려 있는 링거 줄 빼는 날 동네 잔치하라 한다. 그래서 장례식 마치고 온 동네 사람 교회식구 모두 국밥 한 그릇씩 다 대접했다. 자신이 돌아가는 시간까지도 아니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을 알았기에 마지막에는 노모의 모습을 보는 것을 힘들어했다. 엄마 품에 안겨 엄마가 기도해주면 병이 나을 것 같다고 내게 엊그제 이야기 했는데 그때 내가 “50이 넘은 사람이 엄마가 뭐고 어무이 하지”하자 씩 웃는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주님께서는 성도들을 불러 가실 때 온전한 성화를 이루신다는 확신을 조카를 통해 알 수 있게 했다.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내게로 올 자가 없다고 하신 주님께서는 조카를 천국에 들이실 때 정말 순수한 어린아이의 성품으로 변화 시키셨다. 투병 막바지에 뜬금없이 “외삼촌, 제가 제일 잘하는 게 풀 베는 예초기의 달인이라고” 내게 두 번이나 이야기했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하면서 장지에서 내려오다가 아이들에게 네 아버지는 하나님께서 천국동산을 가꾸는 가드너로 스카우트했나보다 하고 울다가 웃었다.


“외삼촌 하나님께 스카우트되었습니다”


조카가 천국 가면서 제게 남긴 이 말처럼 저도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주님 오라 하시는 그날에는 확실히 최고의 값으로 천국 시장에서 하나님께 스카웃되고 싶다.


추신 : 조카에게 집 뒷산에서 너를 마지막 보내던 예식은 세상의 어떠한 연출자도 흉내 낼 수 없는 완벽한 세러머니였었다. 칠순이 다된 너의 고종사촌 자형은 조사를 이렇게 시작했었다

“처남”하고 부르면서 네가 태어나던 날 넌 울었지만 그 때 우리는 모두 웃었고 오늘 네가 떠나는 날 넌 혼자 웃지만 우리 모두는 운다고 정말 우리 모두 그랬다. 그리고 오늘 우리 모두는 찬송을 합창했다 널 떠나보내고 네 아내에게 주님께서 주신 찬송 468장을 내 맘에 한 노래 있어 “평화, 평화 하나님 주신 선물 오 크고 놀라운 평화 하나님 선물일세.” 정말 이 찬송을 산에서 함께 부를 때 우리는 아무도 울지 않았다 울보 쟁이 네 아내도……. 그리고 동네 막내라고 소개한 사람이 정욱이 형님하고 시작하는 조사는 모두의 심금을 울렸고 ‘형님 그동안 함께 살아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러나 내년 봄에 산수 꽃 피고 개나리 진달래 꽃 필 때 형님 생각나면 못살 것 같은데 어떡하지요’ 하고는 엉엉 우는데, 그리고 친구대표, 농민회, 여성동지들도, 많이 왔더라. 너 참 이 세상 잘 살았더라. 그리고 산에서 내려오기 전 우리 모두는 함께 절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하고. 야! 이런 드라마 같은 장면이 어디 있냐? 각본도 없는 암튼 오늘 우리 모두는 너무들 잘했다. 너만 빼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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