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30일 주일 사무엘상1장
오늘부터 사무엘상을 살펴보려고 한다. 사무엘상은 사무엘이 지은 거다. 사무엘이 등장한 시기는 사사시대다. 사무엘은 마지막 사사며 첫 선지자로 사역을 한다. 오늘 말씀에서 사람을 중심으로 해서 생각해 보려고 한다.
첫째, 엘가나다.
오늘 말씀에 보면, 엘가나가 나온다. 이 엘가나에 대해서 1절에 보면,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고, 엘가나가, 에브라임 지파 사람이라는 말은 아니다. 엘가나는 레위 지파 사람인데, 에브라임 지역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거다. 이 사람에게, 두 아내가 있다. 그 아내들의 이름은, 한나와 브닌나다.
‘엘가나’라는 이름의 뜻이 뭐냐면“하나님이 소유하신다, 하나님이 창조하신다”이런 뜻을 가지고 있다. 엘가나는‘하나님이 주인이시다’라는 뜻을 가진, 레위 지파 사람으로, 하나님이, 기업이 되어주신 사람이다.
영적으로 보면, 축복받은 사람이다.‘하나님이 주인되어주시는 자, 하나님이 기업이 되어주시는 자’니, 이게 얼마나 축복인가.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에, 이런 사람은, 그의 삶도, 그의 가정도, 평안이 있고, 형통한 삶이어야 한다. 그런데, 엘가나의 가정은, 그렇지 않았다. 왜냐하면, 엘가나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고, 그 아내들로 인해서, 가정에 평화보다는 불화가 있었다. 물론 그 근본 원인은, 자녀 때문이다.
엘가나에게, 아내가 두 명인 이유는, 본부인인 한나가, 자녀를 낳지 못해서 그랬던 거다. 한나가 불임이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불임으로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녀가 없음으로 해서, 엘가나와 한나는 마음에, 평안이 없었던 것 같다. 자녀가 없는 것으로 인해서, 굉장히 괴로웠던 것 같다. 그래서 엘가나가, 자녀를 얻기 위해서, 브닌나라는, 두 번째 부인을 얻은 거다. 그러면 엘가나는 두 번째 부인을 얻어서 행복했는가? 아니다. 오히려 더 불행한 가정이 되고 말았다.
만약에 엘가나가, 자기의 이름의 뜻대로, 하나님이 창조하신다는 것을 믿고, 좀 더 기다렸다면, 좀 더 기도했다면 어떠했을까? 다시 말해서 엘가나가 주인 되시고, 창조주 되신, 하나님을 신뢰했다면, 그리고 기다린 김에, 더 기다렸다면, 어떠했을까? 엘가나가, 자기 이름의 뜻대로만, 하나님을 신뢰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와 비슷한 일이 아브라함에게도 있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은 어떤가? 혹시 우리도 좀 더 기다려야 하는데, 기다리지 못해서 후회하는 일은 없는가? 또는 기다리지 못해서 죄를 짓고 만 경우는 없는가? 그리고 혹시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믿음으로 지금 기다려야 하는 건 없는가?
둘째, 한나다.
오늘 말씀을 보면, 한나는, 브닌나에 비해서, 믿음이 좋은, 신실한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한 예로, 6절 중반절부터 보면“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또 7절중반절에도“브닌나가 그를 격분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한다. 한나는, 브닌나의, 이런 행동에 대해서, 남편에게 따지거나, 남편을 탓하지 않는다.
창세기16장에 보면, 아브람이, 사래의 여종 하갈을, 첩으로 맞이한다. 사래가 자신이 아무리 해도, 아기를 낳지 못하게 되자, 사래가, 자기 여종을,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다. 사래는 하갈을 통해서라도, 아기를 낳아서, 대를 잇기 위해서다. 그래서 아브람과 하갈이 동침을 한다. 그랬더니 어떤 일이 생기냐면, 창세기16:4절에“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임신하매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그의 여주인을 멸시한지라”고 말씀한다. 브닌나가 한나를 격분시키고 괴롭히듯이, 하갈이,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고, 사래를 멸시하는 거다. 괴롭히는 거다.
그러자 사래가 어떻게 하냐면, 창세기16:5,6절을 보면“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나를 멸시하였거늘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아브람이 사래에게 이르되 당신의 여종은 당신의 수중에 있으니 당신의 눈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고 말씀한다. 사래는 자기가, 자기 여종을 남편에게 첩으로 줘 놓고, 또 자기 남편을 향하여, 당신 책임이라고 한다. 그리고 하갈을 학대한다.
이런 걸 보면 한나는, 정말 착하고 신실한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착하고 신실한 한나지만, 아기를 낳을 수가 없는 거다. 왜냐하면 5,6절에“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라는 말씀이 반복되고 있다. 하나님께서, 한나처럼, 착하고 신실한 사람에게, 더 많은 자녀의 복을 주시고, 평안을 주셔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나님은 오히려, 한나에게는,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고, 브닌나에게는, 자녀들을 주셨다.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건, 아무리 믿음이 좋은 사람이나, 가정이라 할지라도, 모든 것이, 완벽하지 않다는 거다. 어느 사람이나, 어느 가정이나 한두 가지의, 아픔과 문제는 있다는 거다.
한나는, 자식이 없다는 것 외에는, 특별한 문제나, 고통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물질의 문제도 없다. 또 비록 자녀를 낳지 못하지만, 남편과의 애정에 문제도 없다. 왜냐하면, 남편 엘가나가, 한나를, 브닌나보다, 더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4,5절을 보면“엘가나가 제사를 드리는 날에는 제물의 분깃을 그의 아내 브닌나와 그의 모든 자녀에게 주고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또 8절을 보면“그의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냐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냐 하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한나로 하여금, 임신하지 못하게 하셨을까? 웬만한 사람들은, 다 자식이 있는데, 왜 하나님께서 막으셨을까? 하나님께서 왜 이런 아픔을 주셨을까? 이런 괴로움이, 한나에게, 어떤 유익이 되었을까? 착하고 신실한 한나는, 자신의 아픔, 문제를, 해결하려고,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한나는 남편을 탓하지 않는다. 남편에게, 왜 나 말고, 다른 아내를 얻어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냐고,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을 괴롭히는 브닌나와, 싸우지 않는다. 또 브닌나를 향하여, 왜 나를 괴롭히냐고, 원망하지도 않는다.
그럼 어떻게 하는가?
10,11절에“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한나는 하나님께, 자신의 괴로움의 문제, 고통의 문제, 아픔을 가지고 나아가 기도한다. 왜 그럴까? 지금 자신의 문제는, 사람들을 원망해 봤자, 사람을 탓해봤자,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일 거다. 오직 하나님만이, 해결자가 되신다는 걸 믿기 때문이다.
B.M맥스웰이 쓴“그리스도께로 밀려나감“이란 책을 보면, 우리가, 그리스도께로, 나가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고난과 역경을, 어떻게 사용하시는가에 대해서, 설명해 놓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한나로 하여금, 하나님께 나오도록, 자식의 문제와, 브닌나의 괴롭힘을, 사용하셨던 거다.
오늘 우리의 문제들, 아픔들 가운데도 이처럼 하나님께 가지고 나가야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이 있다. 우리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자.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하나님만이, 해결하실 수 있는, 문제들이 뭔가? 건강의 문제일 수 있고, 물질의 문제 또는 자녀들의 문제, 자신의, 장래의 문제일 수도 있을 거다. 우리의 힘이나, 노력으로 안 되는, 그런 문제들, 아픔들이, 분명히 있을 거다. 어쩌면 이 새벽에, 그런 문제를 가지고, 나왔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어떤 결단이, 필요할 수도 있다. 마치 한나처럼 말이다. 정말 하나님께서, 어쩌면, 오늘 내게, 그런 결단을, 요구하시기 위해서, 문제를, 아픔을, 주셨는지도 모른다.
시편107:9절에“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고 말씀한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해결을 사모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만족을 주시고, 좋은 것으로 채워주실 거다.
바라기는, 이런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나와서, 엎드리는, 우리의 남은 삶이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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